일본에서의 결혼생활,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줄곧 살았던 나는 주변에 오타쿠 친구도 없거니와 일본에 대해 관심 둘 일도 없어, 일본에 대해서는 에쿠니 가오리와 이와이 슈운지,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밖에 몰랐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 일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일본에서 애 낳고 살더란 말이지.

하드보일드하게 말술을 마시는 나와는 달리 새가슴에다 담배는 멋으로라도 못 피는 이 사람, ‘군대도 안 가봤으면서’라고 건드리면 ‘그놈의 군대!’라며 병역 면제 정치인(혹은 의가사 제대한 나의 엑스 보이프렌드)처럼 화내는 일본 남자와, 일본에서 이중국적 아기를 키우며 살고 있다.

카디건이 헐렁한 마른 체형에, 샌드위치는 늘 반만 먹고, 취미는 고양이와 산책하기. 일본 소설에 곧잘 나오는 미중년의 환상은 한국에 버리고 왔으나 막상 살아보니 더 깨는 일본생활의 허와 실을 말해본다.

 

일본 사람은 자랑에 인색하다 못해 질색해

한국 육아 커뮤니티에서 아기 사진을 보면 놀랍게도 아기보다 부모가 더 예쁜 경우를 자주 본다. 그래도 아기 엄마는 꿋꿋하게 ‘우리 아기 장동건’이라던가 ‘우리 아기의 완벽한 눈코입을 보세요.’라고 자랑하고, 댓글은 ‘정말 아기 화보 모델 같아요!’라고 서로 띄워 준다. 한국 부모는 고슴도치 엄마처럼 이런 뻔뻔하고 귀여운 자랑질을 재미로 주고받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인지 작년 가을, 친한 이웃이 통화 중에 ‘요즘 아기가 걷지요?’라고 하기에 나도 모르게 그만 ‘네! 너무 귀여워요!’라고 대답했더니 5초 정도 정적이 일었다.

시월드가 없어도 너무 없다

시부모를 처음 만난 건 아기가 태어나고도 몇 달이 지나서였다. 처음에는 이런 문화에 열광했지만, 막상 선글라스 낀 채로 내게 악수 한 번 청하고 계속 남편이랑만 잡담하는 시아버지, 뱅헤어에 유니클로 청바지 차림으로 말도 행동도 소녀 같기만 한 시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혹시 콩가루 집안인가’라는 의심이 살짝 들기도 했다. 차츰 친해진 주변의 이웃들도 비슷하게 사는 걸 보면서 안도하긴 했지만. 물론 가족 간에 힘든 일이 생기면 성심껏 돕는데 그 ‘힘든 일’의 기준이 한국보다 높다.

섹스는 섹스일 뿐

일본은 소위 말하는 성진국. 딸이 태어나면 이름을 뭐로 지어도 AV 배우와 겹친다고 절규했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모든 섹스 토크에 차분하다. 슈퍼마켓에서 처음 보는 잎채소에 ‘츠.보.미.가 무슨 풀이야?’ 라고 물었더니 두 가지로 답해주던 남편. 내 아이가 15년 이내에 콘돔을 정기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할 거라는 사실도 슬슬 익숙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편의점 잡지 매대에서 쉽게 도색잡지를 읽는 일본 학생들을 보면 ‘저러니 낭만도 모르고 결국은 초식남이나 되지’ 하며 슬픈 느낌도 들지만, ‘주냐/안 주냐’로 (혹은 ‘줬냐/안 줬냐’로) 쌈박질하는 한국식 낭만은 그립지 않다.

여자는 일보다 육아

여기서는 다들 ‘얼른 둘째, 셋째 낳으면 좋겠네요!’하고 격려한다. 알고 보니 일본의 육아 국책이 그랬다. ‘애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주부하세요.)’ 덕분에 최근 OECD 국가 중 워킹맘의 월급 차별 부문에서 1위를 먹었다. (2위 한국.) 노산의 위험을 경고하는 다큐멘터리를 공중파에서 방송하고, ’35세가 지난 여자는 양수가 썩어있다’는 낭설도 돈다. 질린 내가 ‘한국은 40대 여자도 보약 잔뜩 먹고 숨풍숨풍 잘만 낳아!!’라며 따졌더니 남편은 ‘뭐? 못생기면 성형한다는 한국식 해법이다!’ 라며 응수했다. 내가 일본에 ‘애 들어서는’ 보약 팔아서 대박 나면 두고 보자.

여자한테 져주는 게 아니고 그냥 진다

결혼생활의 대미, 부부싸움 얘기를 해보면, 난 처음부터 화를 내지는 않지만 조목조목 따져서 끝까지 시비를 가리는 이공계 스타일이다. 논리를 끼워 맞추다 보니 내 말이 다 맞긴 한데 결국 답이 없다. (즉 내 논리대로 하면 우리 부부는 당장 이혼해야 하고 아기는 뱃속으로 돌아가고 지구는 멸망하고 우주는 소멸한다.) 그래서 남편도 화를 내기는 하는데 마지막에는 결국 목소리를 낮추고 ‘노력할게…’라며 뒤로 한발 빠진다. 지저분한 싸움이 싫어서 도망가는 데 익숙한 일본인의 습성, 이라고 분석하기에는 석연찮은 뭔가가 있다. 아, 그냥 콩깍지인가.

반대로 옆집 아주머니는 한국인은 다혈질에 폭력적이라는 편견이 있으신지, 우리 집에서 애가 울기만 하면 문을 두드려 “슈슈상, 혹시 집에 무슨 일 있어요?”라며 물어보곤 하셨다. 아무리 별일 없다고 해도 계속해서 일본인 특유의 조심스러운 말투로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괜찮아요?”라고 물으시는데 출산 후 변비 때문에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느라 애가 울어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못하겠고, 아무튼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인 나라인데도 이렇게나 다르다는 걸 매일매일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